태어날 때 부모님이 있으니 모든 게 있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고 없는 것이 부자연스러운 것인 듯 일반적으로 생각합니다. 어떤 이들은 부모님이 없을 수도 있고 있는 만 못할 수도 있습니다. 존재가 시작되는 이때부터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인생이라고 합니다.
사람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간이 시작됩니다. 살아가면서 인생을 논하는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던거 같습니다.
지금 나는 나의 본질을 찾기 위해 생각들을 정리하고 나를 다잡아 보려는 의도속에 인생에 대해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됐습니다.
나의 인생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인생이란 눈으로 보이지도 않고 추상적이고 누구 하나 나한테 의미를 가르쳐준 적도 없고 저마다 인생의 살아온 기간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니 각기 다른 의견일 뿐입니다.
그렇다고 인생을 논한다 하여 나에게 당장 이득이 되는것도 없고, 나를 당장 변화시켜 주는것도 아니니 인생에 대한 논의나 고뇌는 매번 뒷전이였던거 같습니다. 남이 나의 인생을 판단할수도 알수도 없을 노릇입니다. 그러니 매번 인생은 외롭게 나의 것이고, 나의 고뇌로만 남아 결론도 없고, 그저 스쳐가는 생각이 지나지 않는 것입니다.
골치가 아파서인지 서로 깊이 묻는 이도 없습니다. 그렇다 보니 생각을 깊이 가져본 적이 없습니다. 인생은 살아가는 기간의 나의 중요도는 무엇인지 정해놓는다면 삶의 방향이 정해졌으니 나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살면 되는 것인지 꼬리의 의문으로 글이 맺어집니다.
인생의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것은 결핍에서 오는 것인지 방향을 잃었을 때 내가 갖고 있던 당연한 것들이 갑자기 사라졌고 깊은 상처와 사건으로 남게 될 때마다 나의 방향성은 혼돈과 가슴의 상처만 뫼비우스의 띠처럼 되새기게 됩니다. 기본적인 조건이 당연한 것처럼 살아와서 그런지 나는 부모에 대한 기대치가 컸던 건지 경제적 기대치인지 표현의 기대치인지 살아가는데 나의 잃어버린 방향성은 기본적인 기대치에 서운함이 일렁이기도 합니다.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한다면 살아가는 기간은 무엇인지 나는 오늘도 깊은 생각만 남기고 결론없는 글만 남깁니다. 정량적이지 못한 인생의 논의이기 때문에 논하는게 무슨 의미인가 싶겠지만 하염없이 추락하고 있을때 나스스로 나를 망가뜨지 못하도록 자멸하지 않도록 번뇌해야하고, 인생의 옳고 그름의 판단은 더 먼 미래에 나의 블로그를 들춰볼 때 나 스스로 하면 될거같습니다.
인생의 의미는 살아있는한 끊임없이 해야할 거 같습니다.
살아가는데 목표가 없다하여 삶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살아가는데 비양심적이라 해서 삶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살아가는데 외부적인 상황은 나의 실수와 한탄한다하여 삶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살아가는데 가장 가깝던 사람을 잃는다 하여 삶이 아닌 것은 아닙니다.
나의 방향은 사건으로 뜻하지 않은 상황,
사건의 전과 후로만 나를 정의내릴 수 밖에 없습니다.
사건 후는 모든 의미는 그저 사건에만 맞춰집니다. 그외는 무의미만 존재합니다.
하지만 살아가는데 그것이 전부인건 아닙니다.
사건 전, 나의 기준을 찾기 위해 나는 그와 대화를 해봅니다.
불확실한 미래를 알면서도 무엇이 당신의 확신을 포기하지 않은 채 꿈을 이루게 해주나요?
당신의 그 확신은 어디서 오는 것인가요?
그는 그것은 변하지 않고, 끊임없는 생각으로 다듬어진 나의 목표라고 합니다.
당황스럽게도 나는 목표를 갖추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두려워 할것도, 포기할 것도 아닙니다.
나의 혼돈은 생각만 무성해지는 결론없는 근심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방향을 잃어버린 상황에서 더이상 묻지 않고 그분의 방법으로 만들어보려고 합니다.
나의 혼돈과 나의 몸부림은 나의 목표만이 나를 잡아줄 수 있습니다.
그것이 미래의 불확실성일지라도 나에게는 다른 방도가 없지 않습니까? 그저 하라는대로 합니다.
삶의 기준이 존재한다는건 나의 방황이 오더라도 나의 혼돈을 막아주고
그것이 더이상 나를 괴롭히는 일은 없다는걸 믿게 되었습니다.
나의 기준을 먹물이 번지 듯 옅어지게 만드는 번짐은 막기 위한 힘입니다.
나의 감정을 믿지 말고, 나를 믿지 말아야 합니다.
나는 이테까지 나의 감정에 충실함이 나에게 진실된 것이고, 사람의 정의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가장 믿지 말아야하는 것은 나라는걸 알아차렸다고나 할까요
인생의 손해를 보지 않기위해 나를 믿지 않아야 합니다.
감정으로 가려진 진실이 많습니다. 나는 그러한 속임수에 빠지지 않기 위해 나를 믿지 말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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